04주차 : 시장경제에서 정부의 역할04주차 : 시장경제에서 정부의 역할

Posted at 2011. 3. 31. 14:47 | Posted in 교양/시장경제특강

시장경제에서 정부의 역할


컴퓨터공학부 4학년 김진욱


이번 시강경제특강는 김종석 선생님의 “시장경제에서 정부의 역할" 이란 주제로 공부를 하였다. 선생님의 이름을 처음 듣지만 Principles of Economics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수업이 무척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교양 수준으로 경제학을 배웠기 때문에 시장경제와 정부의 역할에 있어서 무척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 시장 자체는 불완전 한 것이고 그 불완전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거기까지가 끝이다. 그 이상의 것 즉 정부 또한 완전하지 않고 정부와 시장이 적절히 조화된다는 내용이 이번 강의의 핵심 주제였다.

먼저 시장경제에 대해 알아보았다. 시장경제의 두 가지 특징을 통해 알 수 있다. 첫째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자연 질서이다. 공산주의와 달리 시장경제는 이념체계가 아니다. 둘째는 분산된 의사결정이다. 자유방임의 분산된 의사 결정이 오히려 더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경제의 성공 비밀은 신호기능과 배분기능이다.

시장경제의 장점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중요하다. 재산권(사유재산)의 보호, 계약의 자유와 계약 이행 그리고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다. 이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문이 발생할 것이다. 과연 정부란 완벽한 존재인가? 이 세상에는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컴퓨터조차 불완전한 존재이다. 정부 역시 인간을 원소로 하는 집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하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이 실패의 이유를 살펴 보면 공익연원설과 사익연원설을 들 수 있다.

시장 기능과 정부 기능은 대체 관계가 아니다. 시장 기능이 제 기능을 하도록 도와주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가 되어야 한다. 즉 서로의 장단점을 잘 조화하여야 한다. 강의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부족한 감이 많이 왔지만 시강졍에서의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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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주차 : 랩으로 바라본 시장경제03주차 : 랩으로 바라본 시장경제

Posted at 2011. 3. 31. 14:46 | Posted in 교양/시장경제특강

랩으로 배우는 시장경제

컴퓨터공학부 4학년 김진욱

랩과 시장경제라는 두 단어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서 강의는 시작하였다. 랩과 시장경제라는 단어는 모두 자유스러움을 내포하고 있다. 느낌이 오면서도 무슨 내용인지 무척 궁금하였다. 이러한 궁금증은 김정호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서 단숨에 해결되었다. 시장경제와 사유재산 그로 인해 시장이 형성되고 경쟁이 발생되면서 각 단계에 숨어 있는 시장경제원리를 랩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처음 강의는 선생님의 사진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이 사진 이야기에서 우리는 사유재산과 거래라는 것을 통해 배웠고 선생님의 랩을 통해 느낌을 확 얻을 수 있었다. 거래라는 것은 판매자와 구매자 양쪽 모두가 이익인 것이다. 이러한 거래의 시작은 경쟁력과 관련이 있다. 경쟁력이란 무엇인가? 거래에 있어서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는 높게 하고 가격은 낮게 하는 것이 경쟁력이고 많은 기업들은 이러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경쟁은 독점과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독점은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즉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내기 위한 경쟁이 존재 하지 않는다.

경쟁은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국경 넘어 에서도 해당된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해운대행 버스 이야기를 통해서 자유무역 FTA의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었다. 결국 보호무역이라는 것은 형편없는 물건을 비싸게 팔고 싶다는 의미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이러한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아직까지 한국은 건설업과 제조업 분야에서는 World Best이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나머지 분야를 World Best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웅진 그룹과 하임 그리고 STX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란 것을 느꼈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면 된다. 김정호 선생님의 랩처럼 프리스타일 코리아를 외치며 나와 다름이 틀림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발전시켜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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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리스트 갈루아에바리스트 갈루아

Posted at 2011. 3. 31. 13:58 | Posted in Computer Science/정보보호이론

에바리스트 갈루아(Évariste Galois, 1811년 10월 25일 ~ 1832년 5월 31일)는 프랑스의 수학자이다.

추상대수의 한 분야인 갈루아 이론을 위한 이론적 기초를 쌓았으며, 군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갈루아 이론을 사용하여 "5차 이상 방정식에는 일반적인 대수적 근의 공식이 없다"는 정리에 대한 아벨의 증명을 크게 간략화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방정식이 대수적 근의 공식을 갖는지에 대한 문제를 풀어냈다. 갈루아 이론은 현재 추상기하학, 유사 난수, 오류 검출 등 수학, 물리학, 컴퓨터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생애동안에 그의 업적은 높이 평가되지 못했다.

갈루아는 프랑스 혁명 20년 뒤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였던 시절 파리 근교 부르 라 렌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에는 가정교육으로 고전을 많이 배웠다. 12살 때 파리의 명문 리세인 루이 르 그랑교에 입학했지만, 당시의 프랑스에서는 수학 교육은 중시되지 않았다. 갈로아가 처음 수학에 흥미를 가진 것은, 성적이 나쁜 이유로 1년, 2년 아래의 학생들과 같은 학과를 다시 공부했기 때문에 심심하던 차에 인기가 없었던 수학 수업을 들었을 때였다. 게다가 우수한 교사인 리샤르를 만나게 된 행운도 따라 예습으로 르장드르가 저술한 초등 기하학의 교과서를 읽기 시작하고 완전히 빠져버려서 2년치 교재를 2일 만에 읽어 풀어 버렸다. 이윽고 도서관에서 라그랑주나 아벨의 저작을 닥치는 대로 읽게 되어 수학자가 되려고 결심한 것 같다.

갈루아는 유명한 수학자를 많이 낳은 에콜 폴리테크닉에 들어가려 했지만, 입시준비를 게을리했기 때문에(아버지의 죽음,그당시의 어수선한 시대사항,시험감독관에게 지우개을 집어던짐) 2차례나 떨어지고 만다(입시는2번만 주어짐, 2번떨어지면 입학할수없음). 그 즈음 당시의 수학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의 해답을 찾아내 17세 때 자신의 첫 논문인 5차 방정식에 관한 논문을 코시에 위탁하여 프랑스 학술원에 제출하도록 부탁했지만, 코시는 그것을 분실해 버린다. 다른 설에 따르면 코시는 논문이 고교생이 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읽지도 않고 버렸다고도 한다.

다음 해 에콜 폴리테크닉에 재도전하지만 또다시 떨어지고, 결국 1829년에 고등 사범 학교에 입학한다. 직전에 아버지가 목사의 책략에 걸려 자살해 버린다. 재학 때부터 공화파로 혁명 운동에 참가, 교장을 비판을 하는 등의 행동으로 고등 사범 학교에서 1년 만에 퇴학당한다.

1830년에는 과학 아카데미 수학 대상에 응모할 논문을 제출한다. 이 논문은 당시 과학 아카데미의 간사였던 푸리에가 집에 가지고 돌아갔지만, 그 후 곧 사망해 버렸기 때문에 분실된다.

이와 같이 수많은 불행과 불운과 겹쳐 프랑스 혁명에 심취, 국민군에 몸을 던진다. 이윽고 체포되어 Pelage 감옥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며 여기서 재차 논문을 프랑스 학술원에 제출한다. 푸아송이 검토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 갈로아는 이 논문을 짧게 해 다시 제출했다.

갈로아의 업적이 이해된 것은, 1843년에 리우빌이 원고를 재검토하여 노르웨이 수학자 아벨이 최초로 제안한 문제를 이미 해결하고 있었다고 선언했을 때였다. 이 논문은 1846년에 출판되었다.

1830년 '7월 혁명'에 참가하였다가 가석방되었으나 연애 관계에 의한 결투 끝에 죽었다. 결투의 이유는 사랑하는 어떤 여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라고 알려졌지만, 충실한 공화당원인 그가 컵 위에 단도를 내걸어 루이 필립에게 건배를 하는 등의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반동파나 비밀경찰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결투 전날 밤 갈루아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깨닫고, 공화당원인 친구 슈발리에에게 유서를 썼다. 이 편지에서 해석학에 대한 그의 최근의 연구의 개략을 말하고 프랑스 학술원에 보낸 논문 원고를 신경써 주기를 부탁하고 있다. (이 유서에 5차 방정식의 타원 모듈러 함수를 이용한 초월해 공식의 아이디어가 씌어 있다.)

그 중 오늘날 '군'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이론에 의해 방정식을 대수학적으로 풀 수 있는 조건을 구한 <갈루아의 이론>과 <아벨 적분>이라 불리는 것이 가장 큰 업적이다. 그의 주요 논문은 후에 저작집 <갈루아의 수학 연구 업적>에 발표되었다.[1]

1832년 5월 30일 이른 아침 복부에 총탄을 맞고 다음날 목사의 기도를 거절하고, 10시에 코친 병원에서 (아마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갈루아가 그의 남동생인 알프레드에 남긴 최후의 말은 “울지 말아라, 20세에 죽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였다고 한다.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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