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쇼펜하우어이 남자, 쇼펜하우어

Posted at 2012. 4. 28. 06:07 | Posted in 카테고리 없음

"염세주의 철학"의 대표주자 쇼펜하우어. 입만 열면 독설이요, 지독한 여성 혐오증에 편집증을 가진 남자. 평생 독신으로 산 남자. 자신을 따라다니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개를 더 신뢰했다던 남자. 삼십대 초반, 감히 당대 최고의 철학자 헤겔에 맞서 수강신청 대결을 '혼자' 벌이다 참패한 후 다시는 강단에 서지 않고 두문불출 민간 문필가로 지낸, 의외로 소심한 이 남자. 자살을 긍정적으로 논했으면서 정작 본인은 깨알 같은 관리로 72세까지 장수한 독특한 이 남자!

 

그의 결코 단순하지 않은 사상을 짧은 지면에 담을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염세주의(厭世主義)가 진단도 대안도 없이 마냥 세상사에 비관만 하는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그는 세상과 삶이 고통에 차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똑바로 들여다보고, 그 고통을 최대한 덜어내는 길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삶이 왜 고통스러운지, 우리 인간이 얼마나 우매한지 말하기 위해 가차없는 독설을 뱉어댔다.

 

맞다. 그의 말대로 현실은 고통스럽다. 시궁창이다. 그래서 현실을 깡그리 무시한 채 말랑말랑한 거짓 위로만 건네는 책들이 판치고 있는 세상이다. 이럴 때 쇼펜하우어를 읽는다는 건 벌어진 상처 위에 물파스를 바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염세주의자의 문장을 막상 읽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삶에 대한 강한 의지, 건강함과 재치, 낙관성까지도 엿볼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따뜻하지만 거짓된 위로가 아닌, 이 남자의 뼈 있는 독설이 아닐까?

 

세계는 비참한 사람에게 있어서만 비참하고 공허한 사람에게 있어서만 공허하다.

 

우리들 인간과 비교해 볼 때 짐승은 한가지 참된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현재라고 하는 순간을 늘 차분하고 조용한 기분으로 지낸다는 것이다.

 

약간의 근심, 고통, 고난은 항시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바닥짐을 싣지 않은 배는 안전하지 못하여 곧장 갈 수 없으리라.

 

삶의 영역이 제한되어 있을수록, 삶은 행복하다. 따라서 맹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불행하지 않다. 그들의 얼굴에서 만나게 되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평온한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수면이란 낮에 소비된 일부의 생명을 회복해서 유지하기 위해 미리 빌어쓰는 소량의 죽음이다.

 

사람이 우스꽝스럽게 보이거나 초라해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혼이란 누구나 같기 때문이다.

 

짐승을 대함에 있어 굳이 도덕적일 필요도 없을뿐더러 도덕적 책임감이 없다는 잘못된 믿음이 있다. 이야말로 상스럽고 몰지각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보통 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에 마음을 쓰고, 재능 있는 사람은 시간을 활용하는 것에 신경을 쓴다.

 

인간의 행복은 거의 건강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보통이며, 건강하기만 하다면 모든 일은 즐거움과 기쁨의 원천이 된다. 반대로 건강하지 못하면, 이러한 외면적 행복도 즐거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뛰어난 지(知), 정(情), 의(義)조차도 현저하게 감소된다.

 

벌써 될 대로 되어버렸다. 즉,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사고 후에 이렇게 되지 않고도 끝날 수 있었다느니, 조금만 주의했더라면 방책이 있었을 거라느니 등등의 생각에 몸과 맘을 태워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생각이야말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크게 할 뿐이다. 그 결과는 비관 속에 파묻히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므로 이미 바꿀 수 없는 과거의 불행한 사고는 빨리 잊도록 하자. 오히려 그것을 디딤돌로 하여 더 멀리 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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