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관계에도 과업이 있다!대인관계에도 과업이 있다!

Posted at 2010. 12. 31. 20:29 | Posted in 교양/심리학의이해


대학에서의 형성된 관계성은 왜 오래가지 않는 것일까?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은 어떤 성격이며 과연 어느 정도의 신뢰를 가지고 어디까지 지속되는 것일까? 많은 대학생들이 서로 간의 침목도모를 위해 많은 모임을 형성하고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그 관계성이란 졸업을 계기로 소멸되거나 혹은 결속력이 너무나 미미하여 그 의미가 점점 퇴색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왜 대학 친구들이 고등학교 친구들에 비해 오랜 관계성을 유지하는 경우가 드문 것일까?

인간의 육체적 탄생을 제1의 탄생이라고 한다면, 제2의 탄생은 정신적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존재감을 반영하는 무엇인가를 찾고자하는 욕구가 추동하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가 바로 사춘기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기억하고 있듯이 자신에 대한 존재감인 자아정체성(Self-Identity)을 찾기 위해 나로부터의 긴 여행을 하게 된다.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고 정의내리는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청소년기 때 맺은 관계성을 보다 내부적인 소재(Internal Locus)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 심지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 20년 후에 만난 친구이더라도 그 친구에 관해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대한다. 즉, 자아정체성이 형성된 시기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더라도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경향이 있고, 인간의 의식적·무의식적 동기도 그러한 방향으로 일관된다. 하지만 20대가 되면 소속 집단에 관여하게 되는 사회적 전염(social contagion)현상을 경험하게 되고, 집단 내에서는 구성원의 개별성을 멀리하거나, 집단행위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충족하고자 하는 몰개인성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즉, 정체성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며, 이는 개인정체성에서 사회정체성으로 바뀌면서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속해 있느냐의 사회범주화 문제가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해 주는 시기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학에서의 관계는 청소년기 때까지의 관계보다 환경의 변화에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받게 되고, ‘졸업’이라는 사건 이후 자연스럽게 서로 간의 관계결속력이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면 이 시기부터 모든 관계가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형성 유지된다고 보았을 때, 관계를 오래 지속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청년기에 가장 중요시 하는 심리적 성취감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과업성의 부재’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즉, 서로간의 매력에 끌리거나 친하고 싶어서 만나는 단순한 친목도모의 관계는 길어봤자 1년을 못 간다. 서로 만나서 성취감을 맛 볼 수 있는 과업을 반드시 내포하는 것이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허 성 호·중앙대 심리학 박사

출처 : 중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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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치기에 숨은 비밀벼락치기에 숨은 비밀

Posted at 2010. 12. 31. 20:19 | Posted in 교양/심리학의이해



학창시절 시험공부 방법 중 벼락치기는 기본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선생님들은 공부를 꾸준히 하라고 강조하시고, 학생들은 여전히 벼락치기로 시험을 대비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왜 벼락치기를 하는 것일까? 결과적으로 효과를 본 사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또 그 효과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기억의 구조나 인지사고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인간의 기억 영역 중 장기기억(long-term memory)은 오랜 기간 동안 그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가 다시 인출할 수 있는 영역을 말한다. 하지만 모든 정보를 100% 보존하지는 못하며, 최대한 기억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시연(elaborative rehearsal). 즉, 대충 의미를 생각하지 않은 채로 외우는 것이 아닌, 의미를 부여하여 외우는 방법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정교화시연의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특정 정보에 주의를 가지고, 맥락을 만들어 서로 연관된 정보로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신적 각성상태인 주의를 쏟는다는 것은 당연히 시간적 제한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몇 달이 지나도 긴장한 상태로 주의를 쏟는다면 인간의 뇌는 탈진되어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유입된 다른 정보들의 간섭으로 인해 정보가 오염될 수도 있다. 따라서 똑같은 정보를 암기했을 때, 비교적 주의력이 많이 남아있고, 덜 오염된 최근의 정보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벼락치기를 선호할 지도 모른다. 물론 스스로 시간 계획을 지키지 못해서 차선으로 택했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최대의 효과를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이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방법이 기마트리아(Gimatria) 훈련법이다. 예를 들어, 현재 기네스북에 오른 기억력 천재 에란카츠(Eran Katz)가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정보를 전부 기억하는 것도 이러한 원리에서 비롯된다. 즉, 인간의 기억은 단지 수집한 정보를 복사하여 저장하는 하드웨어적인 요소를 뛰어넘어 도식(schema; 낱낱의 정보를 연관된 개념으로 묶어서 재구성한 정보단위)을 활성화하여 획득한 정보를 연결시키는 단서를 만들어 더 풍부한 사회적 추론할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이 전략을 어떻게 더 정교하게 구사할 것인가가 기억력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이제 곧 중간고사가 시작되는데 이러한 방법이 단지 짧은 기간을 두고 측정하는 정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눈앞에 둔 시험이 아니라 평소에 자기 전공이나 관심사에 이러한 전략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전체 행로에 중요한 메시지를 늘 기억하고, 늘 반추할 수 있는 커다란 혜안을 가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허성호 · 중앙대 심리학 박사

출처 : 중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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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신입생들이 허망감을 느끼나요?왜 신입생들이 허망감을 느끼나요?

Posted at 2010. 12. 31. 20:12 | Posted in 교양/심리학의이해



사람은 누구나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을 향하여 노력하며, 찾아오는 성취감으로 만족을 구한다. 이렇게 추구하고자 하는 심리적 상태를 우리는 욕구(need)라고 하며, 단계적으로 볼 때 생존의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기실현의 욕구가 발생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가지 욕구들 중 고차원적인 범주에 있는 가치들은 단순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 무수한 사람들이 많은 노력을 한다. 우리가 대학을 가려는 심리적 동기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매년 많은 새내기들이 좀 더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를 안고 대학에 들어온다.

이미 새내기들의 마음속에는 자존감(self-esteem)이 넘치고, 여기에 버금가는 이상적 성취를 바라는 기대감도 한껏 팽창되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동안 참고 견디었던 시간에 대한 보상을 찾기 위해서 새내기들의 성취욕구는 과거 어느 때 보다 활발히 움직인다. 그 활동의 대가로 획득하는 성과들이 때로는 유희로, 때로는 학점으로, 때로는 교우관계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스스로의 삶 속에 중대한 선물을 바치고, 보다 나은 자신의 안녕감(well-being)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욕구를 채우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추구되는 이 모든 욕구들이 자신의 뜻한 바대로 충족되지는 않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사실들 속에서 그들은 뭔가 자신의 긍정적인 부분들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또 다른 심리적 기재를 발동시킨다. 이것이 바로 자존감을 계속 긍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긍정적 편향(positive bias)인 것이다. 즉 사람은 모두가 아주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자신에게는 약간의 긍정적인 평가를 유도하려는 편향을 가지고 있다. 이를 자기본위적 편향(self-serving bias)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편향이 새내기들한테 작용되는 것이다.

새내기들이 대학에 들어와서 가지는 기대욕구에 비해 충족되는 부분이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스스로 자괴감을 야기하는 단서들을 억제 혹은 억압시키고, 긍정적인 정보들을 고양시켜서 자존감을 계속 긍정적으로 유지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성취결과를 반영하는 물적, 지적, 관계적 소산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심리적인 안정성을 유지하였더라도, 보상되는 가치들은 부족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입생들이 경험하게 되는 허무함 내지 허망감의 심리학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허성호 · 중앙대 심리학 박사

출처 : 중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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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찾고자 하는 대학생 불안증자아를 찾고자 하는 대학생 불안증

Posted at 2010. 12. 31. 20:08 | Posted in 교양/심리학의이해


우리가 대학생활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심리학에서 다루는 가장 큰 쟁점 중의 하나인 ‘자기(Self)'와 관련돼 있다. 그리고 ‘자기’는 사회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미 태어날 때부터 안고 가는 것이라기 보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구성된다고 한다. 즉, 자신을 대상으로 하여 태도를 규정하고, 타인과의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자기’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자기’가 자신이 바라던 대로 되지 않을 때 비로소 불안해지고, 초조해지며,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우리가 대학생활에서 친한 친구가 토익시험을 치고, 여러 가지 자격증을 취득하고자 심열을 기울일 때, 자신은 불안증을 경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현상도 바로 ‘자기’에 대한 반성적인 결과인 것이다. 일찍이 쿨리(Cooley)는 ‘자기’를 파악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기 주위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그가 주장한 ‘Looking glass self'에 의하면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능력, 그리고 그 모습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어떤 평가를 하는지 상상해 보는 능력, 셋째로 자존심, 자괴감 같은 정서를 경험하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여기에 관여되는 ‘자기’상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주의 사람들을 거울로 삼고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의 정서나 행동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대개 자기 주위 사람들과 비교하여 그 답을 찾으려고 할 때가 많다. 예컨대 “당신은 키가 큽니까?”라는 질문에서 대해 자신이 아프리카의 피그미족과 같이 있다면 크다고 대답할 것이고, NBA 농구선수들과 같이 있다면 작다고 대답할 것이다. 즉 비교대상이 정해져 있어야 바른 답을 내릴 수 있고, 비교대상이 되는 것은 대부분 우리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Festinger, 1954). 그래서 늘 우리는 친구들을 보고 자신이 추구해야 할 ‘자기’의 상을 형성하고, 그 형상에 못 미칠 경우 정서적으로는 불안해지고, 행동적인 면에서는 서두르게 되며, 남들의 평가에 비추어 마치 자신이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생활에서 우리가 친구들이 뭔가를 열심히 할 때, 스스로가 불안해 지는 것은 주위 친구들의 그런 모습을 통해 자신을 반성적으로 돌이켜 보거나 ‘자기’ 형상에 좀 더 가까이 가고자하는 정서적인 반응이며, 이러한 정서적 각성으로 인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동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허성호 · 중앙대 심리학 박사

출처 : 중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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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에 대한 열정은 어디에?A+에 대한 열정은 어디에?

Posted at 2010. 12. 31. 20:06 | Posted in 교양/심리학의이해


우리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꾸준히 계획하며,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 그 과정의 서막에서 우리는 늘 기대와 포부를 키우며 희망찬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학생들의 경우 학점이 그것이다. 매학기마다 수강신청을 할 때면 A+를 향하는 눈빛은 거목도 단숨에 자를듯 날카로우며, 마음가짐 역시 평소 때와는 달리 배가되어 굳은 의지가 솟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학기말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수용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학기말에 가서는 초기의 마음가짐과는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학기 초에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며, 초기의 마음가짐이 왜 학기말이 되면 달라지는 것일까? 학기 초 A+를 확신하는 자신감을 갖는 이러한 현상을 Oskamp(1965)은 ‘과신현상’이라고 하였다. 그의 실험에 따르면 어떠한 사실에 근거한 확신을 가지기 위해 정확성은 사실의 결과에 연관이 있지만, 신념은 상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자신이 처음 A+를 받을 거라고 믿는 신념은 결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을 Einhorn과 Hogarth(1978)는 사람들이 ‘확증적 가설검증 방략’을 사용한다는 것에 기인한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가설을 부정하는 정보보다 긍정해 주는 정보를 찾는다. 그러한 증거가 누적되면 비록 정보의 가치가 없더라도 더 많은 지지적인 증거를 확보했다고 여기므로 그에 대한 확신을 더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과신 현상은 우연한 확률이 당시 정보와 유사할 때 더 강하게 나타나며, 인간의 인지 능력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나타난다고 보고한다.(Dunning 등, 1990)

이렇게 과신을 가지고 학기말에 도달한 학생들은 ‘인지부조화’(Festinger, 1957)를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인지부조화란 자신의 태도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하며, 인간은 이러한 괴리감을 최소화하고자 한다는 이론이다.

자신이 믿는 신념적 태도와 그동안 수행해 온 행위들의 결과들이 일치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서 신념적 태도는 여전히 A+를 유지하였지만, 그 동안의 수행결과로 미루어 추론할 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흔히 나타나는 방법이 바로 그동안 취했던 행동에 걸맞게 기존 신념을 변화시키거나 인지부조화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것이다. 따라서 학기말에 와서는 인지부조화로부터 오는 괴리감을 극복하기 위해 A+를 위한 굳은 신념의 마음가짐이 느슨함으로 변하는 것이다.

허성호 · 중앙대 심리학 박사

출처 : 중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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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은 대학원 수업의 의미 - 기억, 리플레이내가 찾은 대학원 수업의 의미 - 기억, 리플레이

Posted at 2010. 12. 31. 20:01 | Posted in 교양/심리학의이해

회의적인 하루 이틀의 연속이 언제부턴가 무료함을 더할 즈음이었다. 무난하게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고 한두 번의 술자리가 있었지만, 마음 한켠에는 묵직한 납덩어리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대학원에서 ‘사회문화심리’를 전공하고 있었는데 학부전공은 신소재 공학이어서 이에 따르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납덩이였고 바로 그 날 강의가 있기 전 나의 얼굴이었다.

칠판에 주어진 단어는 ‘학제주의’였다. 이 주제는 다친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지만 사실 그 의미를 담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그리고 이어지는 강의는 나에게 커다란 엔진을 달아주었다. 대략 그 강의 내용은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것 중에 하나는 스스로 울타리를 쌓는 것이고,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수학의 경지 또한 학제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골자로 이루어졌다. 이것이 나의 용기를 북돋아 그 동안 심리학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카오스적 해석법을 내 연구에 시도하게 되었다. 물론 나의 학기말 보고서를 두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낯설게 쳐다보았으며 인정하기에 앞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고급수학공식이 있어서 난감한 수업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나의 시각을 한 단계 올려 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고 나아가 내가 박사과정까지 올 수 있었던 동기와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리고 수업 대부분이 그 당시 사회적으로 융성했던 사건들을 끊임없이 거론하여 여러 가지 이론을 쉽게 설명하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내 짧은 해석 속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업과 현실이 떨어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논문을 쓸 무렵, 또 다른 심리학 수업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이 여태껏 습득했던 지식들을 가지고 스스로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구체적인 작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우리가 머무는 학교 안에서의 시간은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지 똑같은 결과를 안겨다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다면 대학원 생활에 던져진 화두는 무엇일까. 물론 사람들마다 답변이 다르겠지만 대학원 생활은 자신이 담아온 의미를 훨씬 더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공통적인 맥락이 있다는 가정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반적인 사실일지도 모른다. 심리학 수업들은 내가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지난 2년 동안 구체적이고 다양한 의미를 가져다주었으며 지금도 내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심리학과 박사과정 허성호의 기억

출처 : 중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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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식(Schema), 스크립트(Script), 스토리(Story), 담론(Discours)도식(Schema), 스크립트(Script), 스토리(Story), 담론(Discours)

Posted at 2010. 12. 31. 16:15 | Posted in 교양/심리학의이해


심리학의 이해 수업 시간에 다루었던 부분이다. 기억과 사고를 공부하면서 수업 시간에 도식, 스크립트, 스토리 그리고 담론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그 동안 담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내가 처음 담론이라는 용어를 접하게 된 것은 2004년 2학기 중앙게르마니아 콜로키엄 가을 프로그램에서 제61차로 진행된 푸코에 대한 강의였다. 그 당시 문화 이론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푸코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하였다. 지금은 아트앤스터디에서 여러 가지 철학 강의를 하고 계시는 이정우 선생님께서 푸코에 대해 강의해주셨다. 그 강의 중 "담론" 이라는 말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 당시 담론에 대한 궁금증만 가지고 있고 찾아보지는 않았다. 6년이 지난 지금 심리학의 이해 수업에서 담론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회상이 되었다. 이제 도식, 스크립트, 스토리 그리고 담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도식(Schema)이란 정보는 의미끼리 연결되어 덩어리를 형성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도식은 경험과 새로운 정보가 누적되면서 커지게 된다. 우리는 대학 시절 전공에 대해 공부하는 것과 더불어 도식을 키워야 한다. 허성호 선생님께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만큼 생각한다." 라고 말씀해 주셨다. 문득 2004년도에 수강하였던 중국문화와 이해가 떠올랐다. 수업 시간 중 선생님으로부터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것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만큼 생각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도식과 도식이 모이게 되면 스크립트(Script)를 형성하게 되고 이러한 스크립트 속에 기승전결(起承轉結)이라는 문장 구성에 있어서의 4단계, 즉 서론(序論), 설명(說明), 증명(證明), 결론(結論)이 더해지게 되면 스토리(Story)가 된다. 이러한 스토리 속에서 원래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 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때 담론(Discours)이라고 한다.

도식에 대해 들으면서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시절에 그 학년에는 이해되지 않고 암기하였던 것이 학년이 올라가서야 이해가 되는 현상 이였다. 이것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도식이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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